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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린: 영웅은 출처를 묻지 마라

2010/3/20 11:13:00 229

린린.

집값이 폭등하던 시절에 부동산 재벌은 종래로 풍랑의 뉴스 인물이었다.대만 언론의 최신 보도에 따르면 섬내 부동산재벌 림린이 곽태명을 꺾고 대만의 갑부로 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만의 부동산재벌이라는 이 부자단체에 대한 민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한 사람의 성공에 관심을 가지고, 그 성공의 배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린린은 쌀 상인에서 부동산 악어에 이르기까지


린린, 타이베이 현 출신, 1926년생.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몇 년 배운 적도 없다.20세기 50년대초, 림린은 형 림마비기, 동생 림영삼 (≪ 자유시보 ≫ 설립자) 과"자승부업"을 하면서 소형정미장사와 잡화점을 경영하는데로부터 시작되였고 고향인 로주향에서 삼중시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관찰과 사고를 잘하여 출세했다.


20세기 50년대말, 림린과 형제는 아직 자금이 많지 않았을 때 대담하게 작은 장사를 하면서 다년간 축적한 자본을 극히 싼 가격으로 대북시 남교삼중, 로주, 신장 일대에 넓은 황무지를 사들였다.그들의 이번 조치에 대해 당시 많은 사람들은 리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이 미친것이 아니냐고 비웃었는데 무엇때문에 돈을 들여 이런 값어치가 없는 교외의 썩은 황무지를 사야 하는가?임씨 형제는 제각기 성죽이 가슴에 있기 때문에 각종 의론을 묵살했다.과연 2~3년도 안되여 대만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대북시의 근교는 모두 공업구역으로 변하였으며 삼중, 로주, 신장 등지는 모두 공업구역에 포함되였고 대량의 로동자들이 몰려들어 토지와 건물의 가격이 끊임없이 폭등하였다.림씨형제는 거액의 리윤을 얻은후 정식으로 건축업에 들어가 대북시 내외에 토목을 크게 일으켜 부동한 황금구역에 고급별장과 고층빌딩을 지었다.이렇게 10여년간의 노력을 거쳐 림린 형제는 소미상에서 일거에 전 대만의 유명한 건축업의 거자와 대부호로 되였다.


임증련 "아직 안 했는데 실패부터 생각"


타이중시는 거건설 회장 린쩡롄 (작년 별세) 이 부동산계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하고 보수적인 것도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과 타이완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실력이 가장 풍부한 건설업자가 되었다.


건축 자재를 매매하여 첫 번째 금을 판 후, 린쩡롄은 1960년대에 토지를 팔아 부동산을 만들기 시작했다.부동산 경영에 대해 린쩡롄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아직 하지 않았는데 먼저 실패하고 싶다." 2006년 4월, 타이중시 정부가 토지를 경매했는데, 당시 주위의 토지 최고 시세는 75만 위안 (신타이완 달러, 이하 같음) 에 불과했지만, 린쩡롄은 타이중 부동산이 처음으로 백만 위안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워 평당 101만 위안에 샀다.딸과 주요 간부들은 모두 린쩡롄이 너무 비싸다고 탓했고, 린쩡롄은"나는 기꺼이 더 내고, 돈을 정부에 벌어주고, 1% 의 위험도 무릅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린쩡롄은 당시 이 땅을 교란하는 사람이 사게 하면 옆 땅이 개발할 수 없을 수도 있고, 그 때 더 많은 돈을 써야 살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복했다.모든 일은 먼저 실패와 위험을 생각해야지, 어떻게 원가를 절약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가장 많이 벌지 않고 가장 오래 살기만 한다."


조토 영웅은 출신이 낮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먀오리 시골 아이가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상장 부동산 개발업자가 된 전설적인 경력은 많은 독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2008년에 처음으로 ≪ 부비스 ≫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업잡지) 에 가입하여 이 잡지의 아시아판 표지이야기의 주역으로 된 사람이 바로 원웅그룹 리사장 조후지웅이다.


자오후지오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친구에게 300위안을 빌려 타이베이에 가서 천하를 개척했고, 막노동부터 시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고 전문적인 건축 공력을 연마했다.


이런 패기와 전공 때문에 이득이 적었을지도 모른다.2003년, 대만의 부동산시장은 수심에 싸여있었다. 조후지웅은 대북의 두곳의 침체된 교외인 삼협진, 림구진에서 주택을 구매했다."당시 상황이 상당히 나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기회도 없는 곳이 없었다."라고 조후지웅은 회상했다."하늘은 어수룩한 사람을 좋아한다."5년 후, 두 지역의 주택 가격은 두 배가 되었고, 자오후지웅 산하 위안슝의 주가도 두 배 가까이 증가하여 타이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장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었고, 시가총액은 25억 달러에 달했다.


라이정일의 독특한'호랑이 잡기'철학


"타고난 장사꾼"은 많은 사람들이 대만향림그룹 리사장 뢰정일에게 준 봉호이다.17살 때 그는 고중 1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100원도 안되는 자금으로 한손으로 중대만의 초령풍경구를 개척하였다.그의 44세까지 18억을 들여 일월담의"함벽루"(대만 최고급 휴양호텔) 를 대만 제1승경으로 만들었다.2009년, 향림개발건설의"사림관저"는 더욱 그의 명성을 널리 떨쳤다.향림"사림관저"는"국민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한 지 60년이라고 불리며, 타이완 역사상 처음으로"원수관저"옆에 집을 짓고 팔았는데, 이 명당 평당 300만 위안의 가격은 타이완 부동산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더욱 썼다. 


27년간의 창업 과정에서 그는 얻을 수 있는 어떤 기회도 포기하지 않았고, 독특한'호랑이 잡기'도 스스로 창조했다철학:"만약 호랑이 한 마리가 내 곁을 쏜살같이 달려간다면, 설령 내가 즉시 호랑이의 몸을 잡을 겨를이 없다 하더라도, 내가 호랑이 꼬리의 털 한 가닥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이 기회를 포착하여 호랑이의 등을 뒤집고 호랑이를 타고 두 배로 달릴 것이다."


림진해 대만 신비"부동산왕"


림진해라는 이름을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있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비롭고 저조하기때문이다.그러나 타이완 바오자를 언급하면 섬 내 민중들은 낯설지 않다. 바오자는 1년에 8000가구의 집을 팔고, 10년 동안 누적 추안량은 2500억 위안을 넘었고, 타이완 전역에서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오자가 지은 집에 살고 있다.림진해도 이로 하여 짧디짧은 10년사이에 규모가 전무후무한 부동산왕국을 만들어 500억원의 놀라운 재부를 축적했다.


큰 손으로 돈을 부수지 않고 광고를 한다;화제를 만들지 않고 마케팅을 한다;비싼 값으로 토지를 가로채지 않는다;저택을 짓지 않는 것도 저택이 눈길을 끄는 현란한 빛이 부족하다.저조함은 림진해와 보가가 줄곧 걸어온 시종일관한 행동풍격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가가 쓴 놀라운 성적을 감출 수 없다."주전잡지" 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 보가가 104억원의 사건량으로 처음으로 10대 건설업체의 첫자리에 올랐을 때부터 해마다 련속 사건추진우승을 따냈으며 2009년까지 이미 8련패로서 영락없는 대만부동산의"천왕"이였다.


 오보전 부동산 재벌의'마무리학'


매우 초근성을 가진 리바오건설그룹 회장 우바오톈은 장화래의 시멘트공으로부터 30여 년을 거쳐 현재 연간 영업액이 200억 위안을 넘는 그룹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저조하고 소박하며 사필귀정, 인해파로 한 걸음 한 걸음 북부 지역에 자신의 건설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오보전은 도대체 무엇으로 성공했는가?관건은"마무리","낮은 포석"을 알아야 한다."월미육락세계" 계획을 례로 들면 당시 다른 사람들은 은행이 수습할수 없는 대난장판을 보았지만 오보전은 배후의 100억원의 자산을 보았다.운영과 재정비를 거쳐 오보전은 30억원의 원가만으로 100억의 자금을 투입하여 개발한 월미개발사건의 지분 99.9% 의 진정한 주인이 되였다.엉망진창인 노점을 수습하는 공력은 더욱 시멘트공처럼 표면적인 공력은 결점을 볼 수 없지만 1층이 튼튼하지 않으면 2층이 매끄럽지 않고 소소한 것이 마무리 디테일이라고 오보전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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